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히니오 모리니고 (문단 편집) === 친 파시스트 정권 === 1940년대 파라과이의 군부는 친나치와 친파시스트 성향을 강하게 지녔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추축국 지지자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모리니고에게 압력을 행사하려 했다. 그러나 모리니고 정부는 친 독일파였다. 많은 파라과이 군 장교들과 정부 관료들은 공개적으로 추축국에 동조했다. 남미 최초의 나치당 지부가 1931년 파라과이에 설립된 이래, 독일 이민자 학교, 교회, 병원, 농민 협동조합, 청년 단체, 자선 단체 등이 추축국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미국은 파라과이가 독일과 아르헨티나[* 친 독일 성향을 강하게 내비쳤다.]의 의존과 협력을 막기위해 대여 협정에 따라 파라과이에 상당한 양의 자금과 물자를 공급하고, 공공 사업을 위한 대출을 제공했으며, 농업과 의료 분야에서 기술 지원을 했다. 하지만 많은 파라과이인들은 독일이 미국만큼 파라과이의 주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미국은 매우 불쾌했지만, 모리니고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경제적, 외교적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거부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미국은 모리니고를 연합국 측으로 공개적으로 참전하도록 강요했다. 모리니고는 1942년 추축국과의 외교 관계를 공식적으로 단절했지만 1945년 2월까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리니고는 전쟁 내내 독일군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아르헨티나 군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추축국의 스파이와 요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